대학원 공부노트
남아공 Atlas Cheetah (1986) 본문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815년에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1910년에는 영국 자치령으로 바뀌었으며 1961년까지 영연방에 소속되어 남아연방이라 불렸다. 하지만, 1958년부터 극단적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추진하면서 영연방 회원국가들과 갈등을 빚더니 1961년에 영연방에서 탈퇴하고 만다. 그럼에도 1956년 수에즈 운하 봉쇄를 경험한 영국은 희망봉 해상 루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어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군수지원 협상 등을 논의하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덕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62년에 영국으로부터 16대의 Blackburn Buccaneer 전폭기를 도입하는 등 영국과 활발히 교류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철회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1964년에 영국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무기 금수조치를 취하게 된다. 당연히 영국제 Blackburn Buccaneer에 만족하여 추가 도입을 고려하였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군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하 남아공으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남아공은 프랑스로부터 무기를 도입하게 되었고 그렇게 1960년대 이후로 Dassault Mirage III와 Mirage F1이 남아공 공군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1970년대 후반까지도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실시하고 있던 남아공은 국제 사회로부터 규탄을 받더니 1977년 11월에는 UN이 직접 남아공에 무기 금수조치를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남아공 주변국들은 소련제 최신예 전투기를 도입하며 공군력 증강에 나서면서 남아공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주었다. 결국, 사실상 고립되어버린 남아공은 자신들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기체를 개량하기로 결정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를 경험한 이스라엘에 손을 내민다.
이때 남아공 공군이 보유하고 있던 기체 중 1970년대 중반에 도입하여 가장 성능이 우수했던 Mirage F1은 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별도의 개량이 불필요하다 판단되었으며 무엇보다 일선에서 남아공의 영공을 지켜야 했으므로 개조될 수 없었다. 이에 반해 Mirage III는 1960년대에 도입되어 비교적 오래되었으며 프랑스는 물론이며 이스라엘 등 다양한 파생형 및 개량 사업이 이뤄진 선례가 있었으므로 성능 개량이 비교적 용이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Mirage IV를 기반으로 IAI Nesher는 물론이고 IAI Kfir까지 개발하며 자신들의 Mirage III 성능 개량을 성공적으로 마친 나라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1980년 말에 개발이 중단된 IAI Lavi에 투입된 인력을 남아공에 투입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IAI는 남아공의 Cheetah 개발에 일정 부분 협력 및 관여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며 이는 이스라엘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Mirage III에 대한 개량은 Project Cushion이라는 이름 하에 D/E형이 개발된 뒤 최종형이라 할 수 있는 C형 순서로 개발이 진행되었다. 우선, 동체는 기골 보강과 함께 새롭게 개장되어 기체 사용 시간이 0시간이 되었다. 주익은 저속에서 성능이 떨어지는 점을 해결하고자 단순한 삼각익에서 크랭크드 델타익으로 변경되었다. 더불어 IAI Kfir와 비슷하게 공기 흡입구 옆에 자그마한 귀날개(canard)가 장착되었고 레이돔 양 옆에 스트레이크(strake)가 추가되어 기동성과 고받음각 성능을 높였다. 이때 레이돔 안에 들어가는 항전장비도 상당히 개선되어 이들을 탑재할 수 있도록 레이돔을 비롯한 기수부가 길어진 점도 주목할만한 특징이다. 하지만, 엔진만큼은 이스라엘의 Kfir가 General Electric J79로 교체한 것과 달리 남아공의 Cheetah는 SNECMA Atar 9C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래서 날개가 커지고 또 새롭게 추가되면서 기동성은 향상되었으나 엔진은 그대로였으므로 가속력과 최대 속도는 줄어들었는데 운용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참고로, 훗날 등장하는 C형은 Atar 9C 엔진보다 강력한 Atar 9K 50 엔진이 탑재되었다.
단좌 E형은 C형이 등장하기 전까지 임시로 운용할 목적으로 개발된 기체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간단한 항전장비와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으며 엔진 역시 기존의 Atar 9C-3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훗날 퇴역한 기체들 중 5대는 칠레에 판매되었다. 당시 칠레 공군이 운용하는 Mirage III는 Mirage III에 Atar 09K-50 엔진을 탑재한 Mirage 50였는데 칠레는 이를 이스라엘 IAI와 함께 현대화 작업을 한 뒤 ENAER Pantera라는 이름으로 운용하는 중이었다. 외형은 남아공의 Cheetah가 이스라엘의 도움을 받았듯이 Cheetah와 비슷한 형상을 지녔다. 그래서 공기 흡입구 측면에 고정식 카나드익이 추가되었으며 보다 발전된 항전장비를 탑재할 수 있도록 레이돔이 연장된 점이 외관상 바로 확인 가능한 특징이다.
복좌 D형은 C형을 조종하기 전에 전환 훈련 용도로 제작된 훈련형 기체였다. 이후에 D형은 C형과 동일한 수준으로 성능 개량 사업을 받게 된다. D형 중 847번 기체는 소련제 Klimov RD-33 엔진의 파생형이라 할 수 있는 SMR-95 엔진을 탑재하였다. 러시아제 엔진을 탑재한 847번 D형 기체의 성능은 인상적이었으나 기체의 무게 중심이 바뀐다는 점과 예산 삭감을 이유로 연구는 종료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이스라엘과 함께 기체를 현대화하였다 할지라도 1960년대 설계를 기반으로 제작된 기체이므로 이제는 개량을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성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D형은 영국제 Blackburn Buccaneer를 대체할 전폭기로 운용될 것을 고려하여 잠정적으로 핵무장을 고려한 설계가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1990년대에 와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핵무기를 모두 폐기하기로 선언해 D형의 핵무장은 전면 백지화되었다. 이밖에 전술 정찰기라 할 수 있는 Cheetah R이 개발되었으나 정찰에 특화된 기체를 따로 제작하는 것보다는 정찰 포드를 C형에 탑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 하에 단 1대만 제작된 채 개발이 중단되었다. (남아공으로부터 Cheetah를 도입한 칠레 공군도 2006년에 Pantera를 퇴역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C형은 E형에 비해 정교한 항전장비를 탑재하였으며 향상된 펄스-도플러 레이더를 탑재하였다. 조종석에는 HUD와 HOTAS가 적용되었고 캐노피 유리창 또한 기존의 3 분할된 형태가 아닌 단일 유리창으로 변경되었다. 뿐만 아니라 주익 윗부분을 자세히 보면 D/E형에 존재했던 웽펜스가 제거된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공중 급유 프로브도 증설되어 1986년에 남아공이 도입한 Boeing B707 공중급유기로부터 공중 급유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1992년에 E형이 퇴역한 데 반해 C/D형은 Gripen이 남아공에 도착하는 시점인 2008년까지 운용되어 단계적으로 퇴역하였다.
이후 남아공은 무기 금수조치가 이뤄진 가운데 여러 차례 전쟁을 수행하면서 많은 무기를 잃었으며, 1990년대 이후 주변국들과 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군사력을 전처럼 키워가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그래서 1999년에는 스웨덴제 JAS 39 Gripen C/D를 자신들의 요구 조건에 맞춰 조금 개량한 채 26대라는 매우 작은 수량으로 도입하게 된다.
2008년 4월에 스웨덴제 JAS 39 Gripen이 남아공에 도착하면서 남아공 공군에서 퇴역한 Cheetah는 2000년대 이후 에콰도르와 칠레에 수출되었다. 칠레는 2003년에 남아공이 보관하고 있던 5대의 Cheetah E형을 구매하였다. 당시 칠레 공군은 이스라엘의 IAI와 공동으로 자신들이 프랑스로부터 도입한 Mirage 50C를 ENAER Pentera라는 이름으로 현대화하여 운용하고 있었는데 Cheetah는 이들을 위한 예비 부품으로 사용하고자 도입한 것이었다. 기체의 이름만 다를 뿐 둘 다 프랑스제 Mirage III라는 점은 동일하며 IAI를 통해 개량되었으므로 상호 간에 부품을 호환할 수 있었다.
2009년 9월에는 에콰도르 국방장관이 Cheetah C형 10대와 D형 2대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다. 이에 계약은 2010년에 이루어졌고 2011년 4월, 초도 물량에 해당하는 3대의 Cheetah 전투기가 에콰도르에 도착했다. 이밖에도 2017년 12월에 미국의 Draken International에서 Cheetah를 가상 적기로 사용하고자 9대의 단좌형과 3대의 복좌형을 도입하였으며 오늘날 Atlas를 합병한 데넬(Denel)에서 2대의 D형을 체계 개발 시험용 테스트베드 기체로 운용하는 중이다. 그중 한대는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러시아제 엔진을 탑재할 수 있도록 개조를 받은 바 있다.
참고 내용
[1] 1990년 나미비아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나미비아는 1884년부터 1910년까지 독일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국으로 전락하면서 1990년까지 영국의 남아프리카 연방의 위임 통치령이 되었다. 1990년이라는 매우 늦은 시기에 독립하였는데 실은 UN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남아프리카 연방 측에 나미비아의 독립을 요구하였으나 남아프리카 연방이 이를 거부하였다. 1966년부터 1989년까지 지속된 나미비아의 독립 전쟁에서 소련은 나미비아를, 남아공은 포르투갈의 지원을 받았다. 포르투갈은 1961년부터 1974년까지 아프리카에서 식민지 전쟁을 수행하였으며, 1975년 앙골라 독립 전쟁도 수행하였는데 이때 모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도움을 받았기에 이번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도와준 것이다. 남아공이 앙골라의 독립을 저지한 이유는 소련의 지원을 받아 독립 전쟁을 일으킨 앙골라의 공산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앙골라와 남아공 사이에는 나미비아가 존재하나 전에는 나미비아가 남아공 영토에 소속되어 있었다.
[2] 남아공이 1962년에 영국으로부터 도입한 16대의 Blackburn Buccaneer 전폭기는 이동 중 1대가 손실되어 총 15대가 남아공 공군에게 인도되었다. 이후 기체의 성능에 만족한 남아공 공군은 추가 도입을 추진하고자 하였으나 1964년에 영국이 금수조치를 내리면서 추가 도입은 좌절되었다. 남은 기체는 1991년에 퇴역하였다.
[3]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수도가 프리토리아(행정), 블룸폰테인(사법) 그리고 케이프타운(입법) 이렇게 세 곳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최대 인구 도시는 3개의 수도 중 하나가 아니라 케이프타운이다.
[4] 1994년 5월부터 1999년 5월까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라카 공화국 대통령을 맡았다.
[5] 1975년에 이스라엘과 남아공 사이에 합의서(agreement)를 맺었다고 하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6] 복좌형(D형)은 1986년부터 배치되었고, 단좌형(E형)은 1988년부터, 최종형인 C형은 1995년에 등장하였다.
[7] 이스라엘이 남아공에 Kfir 전투기 5대가량을 인도해주었다는 말이 있는데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
참고자료
Wikipedia, Atlas Cheetah
Wikipedia, Saab JAS 39 Gripen
Wikipedia, Dassault Mirage III
Wikipedia, Klimov RD-33
쿵디담, 남아공의 국산 전투기 데넬 치타(Atlas Cheetah)
sundin13. 남아공 공군과 남서변경작전 [1966~89]
sundin13, 남서 변경의 해적, 블랙번 “버캐니어" [남아공 공군: 남서변경작전 1970~80]
sundin13, 남아공 공군의 “남서변경전쟁" 항공작전 [1975~88]
네이버 무기백과사전, 아틀라스 치타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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