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공부노트
이집트 Helwan HA-300 (1964) 본문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전쟁이 마무리되었지만 2차 중동전쟁 이후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오히려 미국과 소련이 개입하면서 중동에는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반격하기 위해 소련의 군사 원조를 받기로 하고 이를 통해 최첨단 무기들을 대거 들여온다. 대표적으로 소련에서도 이제 막 배치하기 시작한 MiG-21이 이집트에 들어온다. 그리고 소련이 저렴한 가격으로 MiG-21을 제공해 준 덕분에 이집트는 빠르게 공군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소련의 지원에 밀려 이집트는 독자적인 제트 전투기 HA-300의 개발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가 추진한 HA-300 제트 전투기 개발 사업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Me262 Schwalbe를 포함해 걸출한 전투기를 생산해낸 Messerschmitt 항공기 제작사에서 시작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패망한 독일은 1955년까지 항공우주 관련 연구가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그래서 많은 독일 엔지니어들은 독일을 떠나 아르헨티나와 같이 친독일 국가의 항공기 개발 사업에 참여하였다. 그중에는 1951년, Messerschmitt의 설립자 Willy Messerschmitt도 있었다. 그는 독일을 떠나 스페인의 항공기 개발업체인 Hispano Aviacion에 들어가 스페인이 기존에 개발해온 HA-100을 기반으로 경량 제트 항공기를 개발하는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게 스페인은 1955년 8월 12일, HA-200 Saeta 고등 제트 훈련기를 개발해낸다. 그리고 스페인이 독자 개발한 항공기가 성공적으로 비행에 성공하자 이집트의 항공산업을 비롯하여 산업 역량을 육성하고 싶었던 나세르는 1959년 스페인으로부터 HA-200 고등 훈련기의 면허 생산권을 얻어오며 항공산업과 관련하여 스페인과 협력을 추진하게 된다.
한편, HA-200과 별개로 Willy Messerschmitt는 'HA-300'이라는 경량 제트 전투기를 구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HA-300은 HA-100 훈련기를 기반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HA-200 고등 훈련기와 다르게 완전히 새로운 제트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이었으며 자금 지원마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게다가 때마침 1955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이 스페인을 비롯한 NATO 회원국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당시로서는 고성능 전투기였던 F-86F를 제공해주면서 1960년에 스페인의 독자적인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은 중단되었다. 그러자 스페인의 HA-200을 면허생산 하면서 그 성능에 만족했던 이집트는 HA-300 프로그램을 그대로 자기 나라로 유치해왔다.
그렇게 이집트는 자국 공군에 인도할 초음속 단좌 경량 요격기 개발을 목표로 HA-300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당시 스페인에서 이 프로그램을 주도해 온 Willy Messerschmitt도 사업과 함께 이집트로 건너왔다. 이후 1964년 3월 7일에는 임시적으로 영국제 엔진을 탑재한 HA-300 시제기가 첫 비행에 성공하면서 개발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1965년에는 마하 1.13이라는 초음속 비행 기록까지 수립한다.) 더 나아가 나중에는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E-300 제트 엔진을 탑재하려는 야심찬 계획도 구상하고 있었다. 이는 초음속 비행을 하기에는 영국제 오르페우스(Orpheus) 엔진의 성능이 부족했던 점도 있었으나 1956년 수에즈 운하로 빚어진 갈등과 전쟁 이후 영국제 엔진에 의존했다가는 치명적인 안보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을 거라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를 계기로 영국과의 관계가 틀어진 상황이었다. (이란을 생각해보면 된다. 미국의 최우방국이었던 이란은 미국 외에는 운용하지 않았던 F-14 Tomcat을 들여왔으나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자 더 이상 관련 부품을 수급받지 못해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Junkers사에서 엔진을 제작하다가 종전 후 나포되어 소련에서 제트 엔진을 개발하고 있었던 오스트리아인 Ferdinand Brandner의 영입하였으며 이집트와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인 제트 전투기를 개발을 희망하고 있었던 인도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1963년 7월에 E-300 엔진이 성공적으로 시운전을 마치게 된다. 참고로, 앞서 소개한 Ferdinand Brandner가 이끄는 개발팀은 소련에서 1951년에 쿠즈네초프(Kuznetsov) NK-12 터보프롭 엔진을 개발하였으며 이 엔진은 오늘날까지도 실용화된 터보프롭 엔진 중에서 가장 강력한 추력을 자랑하며 많은 러시아 항공기에 사용되고 있다. 한마디로 엄청난 실력을 가진 엔지니어가 이집트의 독자적인 제트 엔진 개발에 참여한 것이다.
그러나 HA-300 전투기와 E-300 제트 엔진 개발은 1969년 5월에 전면 중단되고 만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으나 앞서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소련이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해준 MiG-21이 사업 중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에 독자적인 제트 전투기 시험 비행에 성공하고 엔진까지 개발해냈지만 양산 및 운용까지 한다는 것은 당시 충분한 산업 역량을 갖추지 못한 이집트에게는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더불어 소련 입장에서도 수출 시장에서 자신이 만든 MiG-21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이집트의 독자 개발을 좌절시키고자 저렴한 가격에 자신들의 최신예 전투기를 공급해준 것이 아닌가 싶다. 이와 함께 이집트가 독자 전투기 개발에 힘썼던 이유 중 하나였던 이스라엘이 모사드를 통해 이집트에서 일하고 있던 독일 엔지니어들을 협박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마지막으로 1967년에 일어난 제3차 중동전쟁으로 나라가 대내외적으로 어수선해지면서 사업이 진행되기 어려워졌으며 이것이 전투기 개발 취소로 이어졌다. 결국, 이후로 이집트는 소련이나 미국으로부터 전투기를 도입해올 뿐 더 이상 독자적인 개발 사업은 추진하지 않았다.
참고자료
Wikipedia, Helwan HA-300
Wikipedia, Hispano HA-200
Alchetron, Helwan HA-300
[KAI 항공칼럼] 남도현의 항공 History <23편 : 그때 이집트가 제트기를 만들었다.>
August의 군사세계, "우리도 만들었다. [7]
War & Tech 57 국가가 나서서 독점 유지하는 무기 시장
무수천, 미완의 이집트산 제트전투기 헬완 HA-300 (2017)
bemil 유용원의 군사세계, 이집트가 개발한 전투기 Helwan HA-30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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