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공부노트
독도 공부_다케시마 반박 자료 본문
#1 무주지 선점론
일본은 독도를 국제법상 무주지, 주인이 없는 땅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서양 제국주의 시대 때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사용되던 제국주의적 논리이다.
일본은 러일전쟁에 대비하여 독도를 자신들의 땅으로 편입시켜 망루를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1900년 10월 25일 고종 칙령 제41호에 의해 독도는 주인이 없느 땅이 아님을 반박할 수 있다.
"울도군의 행정구역은 울릉도 전도와 죽도, 석도(독도)를 관할할 것."
그리고 일본 어부들이 독도에서 어업을 할 때 조선 정부에 세금을 냈다는 점도 독도가 우리 땅임을 말해준다.
세금 부과는 실효적인 지배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2 일본은 17세기부터 독도를 발견하고 영유권을 확립했다.
우리나라는 6세기 지증왕 이사부 우산국 정복. 즉, 이때부터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일본은 왜 17세기부터 독도에 사람이 없었고, 이를 일본이 먼저 발견했다고 하는가?
15세기 우리나라와 중국은 일본 도적/해적 무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에 15세기 무렵 국민들을 내륙으로 들여보내 섬을 비우는 공도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래서 이무렵 독도를 발견한 일본 사람들의 주장을 근거로 독도는 무주지였고, 일본이 먼저 발견했다는 것임.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이후에 다시 한 번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일본에 각인시켰다.
1870년 일본 외무성의 조선국 내탐서.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조선의 부속이 되었다고 확인한 문서.
17세기 말에 안용복이라는 노비(어부)가 일본 영주에게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임을 각인시키고 돌아온다.
슬프게도 안용복은 두 차례 일본으로 건너 갔는데 1차 일본 방문 때는 허락 없이 외국으로 갔다는 이유로 곤장 100대.
2차 일본 방문 때는 사형이 내려졌으나 감형되어 유배로 바뀌었다.
1877년 태정관 지령문. 1962년 조선인이 섬으로 돌어간 이래 본방(일본)과 관계가 없었졌다고 언급함.
해당 지령문에는 죽도(울릉도)와 그것의 밖에 있는 한 섬(독도)는 본방(일본)과 관계가 없음을 명심할 것.
그리고 지령문에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약도가 첨부되어 있다.
#3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1951)
샌프란시스코 제2조 A항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청구권을 포기한다.
해당 조약에는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는 있으나 독도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므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삼천여개에 달하는 섬이 존재하므로 이 섬을 모두 언급할 수는 없었다.
(해당 조약에서 일본 영토도 혼슈, 규슈, 시코쿠, 훗카이도만을 일본 영토로 인정한다고 했다. 언급 안 된 섬들은 포기할래요?)
그리고 독도는 울릉도에 부속되어 있는 섬이기에 울릉도를 언급하였다는 것만으로 독도는 자동으로 포함된다.
원래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1차부터 5차까지만 해도 독도가 실질적으로 언급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로비로 미국은 독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단, 이는 미국이 독도 문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암묵적으로 독도는 일본 땅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1946년 스카핀 문서 제667호를 언급하며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대해 반박한다.
여기에는 독도를 '리암쿠르트'라고 언급하며 우리나라 영토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일본은 이에 대해 샌프란시스코 조약보다 나중에 나온 것이니 무효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샌프란시스코 조약보다 먼저 나온 것이니 그 뒤에 나온 조약들에는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이라 주장한다.에 ㅇ
하지만, 일본의 주장을 따르더라도 다른 근거가 있다.
스카핀 문서 제677호-1에 의하면 "독도를 일본 영토로부터 분리한다."라는 말이 있다.
즉, 샌프란시스코 조약 이후 일본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리암쿠르트란?
1849년 프랑스 리앙쿠르 호가 우연히 독도를 발견했는데 이름을 몰라 배 이름을 따서 리앙쿠르트 암초라 부르게 되었다.
#4 러스크 서한
러스크 서한은 한반도가 한창 전쟁 중이었던 1951년 8월에 언급되었다.
당시 미국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소멸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독도가 북한의 손에 들어갈 경우 북한이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해 동해를 장악할 수 있을거라 우려했다.
그래서 '러스크 서한'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전쟁 중이었으므로 러스크 서한에 대해 직접적인 대응을 할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 미국은 러스크 서한이 단지 미국만의 견해일 뿐 이를 공식적으로 부정한 상황이다.
#5 국제 사법 재판소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 때 독도를 국제 사법 재판소에 회부하자고 한국 정부에 제안했다.
우리나라는 가뜩이나 국민 여론이 악화되는 가운데 독도 문제를 거론하면 협정 자체가 결렬될 것이라고 이를 거절한다.
왠지 국제 사법 재판소에 가면 공정하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국제 사법 재판소에 갈 경우 대한민국은 독도를 분쟁 지역임을 인정해야 한다.
원래 우리 땅인데 굳이 우리 영토라는 권리를 포기하면서 재판에 임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국제 사법 재판소를 통해 분쟁이 해결된 사례는 극히 적고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우리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된다. 분쟁 지역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를 노리는 것이며, 국제적으로 분쟁 지역임을, 한국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그리고 한 가지 흥미로운 점. 일본은 관할권 수용 국가이고 우리나라는 수용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 국가이다.
그 이유는 일본이 전범국가이기 때문. 즉 우리는 일본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으니 일본은 우리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다.
#6일본이 독도를 탐내는 이유1: 200해리
일본의 다케시마 주장은 1990년대 말에 등장한다.
그리고 1994년에 중요한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바로 새로운 해양법이 만들어진다.
자국 연안에서 12해리까지 영해로 주장하던 것이 200해리로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배타적 경제수역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어디까지를 내 바다로 볼 것인지가 다시끔 중요해졌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독도를 섬으로 해야하는지 바위로 해야하는지 정해야만 했다.
일본은 오키노토리 섬이 있는데 이곳은 섬이나 바위라기보다는 암초 수준이다.
그래도 경제 수역 확보를 위해 일본은 콘크리트를 부어 오키노토리 섬을 조금 키워 섬으로 불렀다.
그래서 오키노토리 섬보다 더 큰 독도를 단순한 바위나 암초로 부를 경우 자신들의 논리에 오류가 발생한다.
따라서 독도는 섬이고 이를 두고 200해리를 정하면 우리나라와 경제수역이 겹치므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7 일본이 독도를 탐내는 이유2: 자원
독도 아래에는 메탄 하이드레이트 6억톤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약 10조 원의 이익을 가져달 줄 수 있는 미래의 핵심 에너지 자원이다.
#8 일본이 독도를 탐내는 이유3: 군사적 이익
러일 전쟁 때 일본이 망루를 설치하려고 했듯, 러스크 서한 때 일본 영토로 넣으려고 한 것처럼 군사적 요충지이다.
동해 한가운데에 위치하여 일본 입장에서는 북한과 러시아의 동향을 살피기에 좋은 장소이다.
참고자료
차이나는 클라스, 독도와 위안부 호사카 유지 교수 EP.1-1
이다지do, [독도] 일본 주장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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