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9 07:24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대학원 공부노트

1971년 대만의 UN 탈퇴 본문

항공/중국과 대만

1971년 대만의 UN 탈퇴

lightbulb_4999 2022. 7. 15. 15:00

Gript

1949년 10월 1일, 중국 본토에 공산주의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부터 장제스의 중화민국과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 중 어느 나라가 중국을 대표해야 하는지는 끊임없는 논란이 되어왔다. 그러나 UN이 인정하는 중국 정부는 마오쩌둥의 공산당 정부(중국)가 아니라 미국의 지지를 받는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대만)였다. 마오쩌둥은 1950년부터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다"라고 천명하면서 "대만은 중국의 영토이므로 대만 정부 대표는 즉각 UN에서 쫓아내야 하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대표를 UN 주재 중국의 유일한 합법 대표로 인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주장과 중국 대표권 문제는 미국을 주도로 한 서방의 반대로 매번 부결되었다.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은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나라임에도 UN 총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1960년대에 소수의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대만이 아니라 다수의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중국 본토가 중국을 대표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는 "중대한 문제는 중요사항 지정방식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의 대공산권 방지안에 의해 무산되었다. 이때 중요사항 지정방식이란 '중국 대표권 교체'에 관한 결의는 구성국의 3분의 2의 다수를 요구하는 중요사항이라는 결의안을 먼저 과반수로 가결시킨 뒤 중화인민공화국의 대표권을 3분의 2의 다수 찬성을 획득하지 못하면 부결시키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과반수로 바로 대표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어 중요사항인지 여부를 결정한 뒤, 다시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어야만 중국의 대표권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국가들의 노력 덕분에 중국 대표권 문제는 UN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 표결되었으나 현실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1970년에는 결의안의 3분의 2에 미달되어 비록 부결되기는 했으나 찬성표가 반대표를 상회하기에 이른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제3세계의 다수 국가들이 UN에 가입함에 따라 더 이상 서방국가들만 힘을 합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0년대 말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상황이 달라졌다.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으로 베트남전에 개입한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미군을 철수하고자 하는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자 했다. 이에 1969년 1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미중 수교를 언급했고, 1969년 7월에는 미국인의 중국 관광을 허용했다. 이어서 12월에는 대중 무역 규제를 완화하는 등 친중 행보를 보였다. 그는 중국을 통해 베트남전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으며 1972년에는 직접 중국을 방문하여 그 유명한 '핑퐁 외교'를 보여준다. 한편, 중국은 1969년 3월 우수리강 유역에서 소련과 국경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부패와 독재 외에도 본토 수복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장제스 체제의 대만은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위협하는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한편, 1971년 4월에는 미국 탁구 대표팀이 중국을 방문하더니 1971년 6월 10일, 닉슨 대통령은 대 중국 금수조치를 해제하며 중국과의 관계가 빠르게 호전되었다. 그러더니 1971년 6월 11일 리비아가 대만과 우호관계를 청산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으로 승인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대만 63개국 중국 62개국이었던 수교 국가 수가 역전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미국도 중국의 UN 가입을 적극적으로 막을 생각이 없어졌다. 점점 과반수를 넘어가더니 3분의 2 의결에 미치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럼에도 미국은 기존에 대만과 이뤄 놓은 관계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대만 정부의 UN으로부터의 추방은 중요사항이다.'라는 이른바 역중요사항 지정방식에 의한 결의안을 별도로 제출하였다. 이는 중국의 UN 가입과 알바니아안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시 UN 가맹국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중요사항 지정방식이 중국의 진입을 막았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대만의 퇴출을 막는 기능을 한 것이다. 그리고 1971년 10월 25일, 알바니아 안에 앞서 역중요사항 지정안이 먼저 표결에 부쳐지게 된다. 하지만, 역중요사항 결의안은 찬성 55, 반대 59, 기권 15, 불참 2로 부결되어 대세는 이미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기울고 말았다. 조지 부시 UN 대표는 알바니아 안의 '중국 가입'과 '대만 축출'을 분리 표결하자고 제안하나 절차상 합당하지 않다는 총회 의장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그렇게 1971년 10월 25일, 제1967차 UN 총회에서 알바니아가 발의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대표권 귀속 문제가 표결에 부쳐졌다. 투표 결과는 128개국 가운데 찬성 76표, 반대 35표, 기권 17표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안전보장이사회 5대 상임이사국이 된다. 그리고 그날 채택된 UN 결의 제2758호 결의안이 가결되기 전에 대만 외교부장 저우슈카이는 의장의 양해를 구한 뒤 단상에 올라 UN 탈퇴를 선언하고 퇴장한다. 제2758호 결의안은 중국이 UN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인 권리를 가진다고 결정함으로써 중화민국(대만)을 UN에서 축출한다는 결정을 담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UN 가입이 확정된 날, 대만 국기는 UN 본부 앞 게양대에서 끌어내려졌다.

 

관련 용어

가결: 회의에서 제출된 의안을 합당하다고 결정함. (네이버 국어사전) 

결의: 의논하여 결정함

표결: 회의에서 어떤 안건에 대하여 가부 의사를 표시하여 결정함.

부결: 의논한 안건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기로 결정함. 또는 그런 결정

 

[추간 내용1]

2009년 9월 마잉주 총통이 17년간 추구해 왔던 UN 가입을 공식 포기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대만의 UN 가입문제는 일단락되었다. 한편,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유엔에 가입하였다. 따라서 당시 공산당 중국의 유엔 가입은 우리에게 위기로 다가왔다. 하지만, 1988년에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개최해냈고 1989년 2월에 적극적인 북방외교 추진의 결실로 헝가리와 수교를 맺으면서 점진적으로 국제 사회에 대한민국의 인지도를 키워 나갔다. 특히, 1990년에 소련과 수교를 맺은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1991년 구소련의 해체와 동구권의 몰락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유엔 가입을 추진하였다. 다행히 냉전이 종식되면서 유래 없이 안보리 상임이사국 간에 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남한과 북한 모두 유엔에 가입하게 되었다. / 한때 북한이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대신, 남북한 단일 의석안을 제안했다고 하는데 무슨 꿍꿍이로 이런 제안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추가내용2]

1950년 제5차 유엔 총회에서 중국 대표권 문제가 최초로 공식 제기되었다. 이때 문제를 제기한 국가는 인도였으며 인도는 중화인민공화국 공산당 정권에게 유엔 대표 자격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해당 결의안은 반대 33 찬성 16 기권 10으로 미국의 반대와 함께 좌절되었다.

 

[추가내용3]

1971년 11월 15일, 처음으로 유엔 총회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은 미국을 신랄하게 비난하며 한국에 관한 유엔의 모든 결의를 무효화시키고 언커크(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를 해체해야 한다눈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며 기세를 올렸다.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제연합(UN) 중국대표권 문제

한국일보, [기억할 오늘] 대만 유엔 탈퇴 (10월 25일) - (2017)

zznz, 50년 전 대만의 유엔 축출과 중국의 유엔 가입 과정…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교훈 남겨

네이버 블로그 블루하늬, 유엔, 중국 가입시키고 대만 축출

 

'항공 > 중국과 대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60년대 중국 항공사  (0) 2022.07.29
1950년대 중국 항공사  (0) 2022.07.28
1980년대 대만 항공사: F-20 타이거샤크  (0) 2022.07.16
1970년대 대만 항공사  (0) 2022.07.14
중국의 항공모함 이야기 1  (0) 2022.07.0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