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공부노트
1980년대 대만 항공사: F-20 타이거샤크 본문
Northrop은 1970년대 F-5를 도입한 국가들이 새로운 기체를 도입할 시점에 맞춰 1970년대 초부터 F-5 성능 개량 사업을 구상했다. 1962년부터 양상된 F-5A/B는 미 공군에서는 도입하지 않았음에도 F-104와 같은 마하 2급 전투기를 도입하기 어려운 국가들에 미국이 무상으로 제공해주면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운용되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의 무상원조 정책으로 널리 도입된 F-5를 고객들의 요구에 맞게 적절히 개량해줄 수 있다면 충분히 추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사업이라 판단한 것이다.
국제 사회 분위기도 Northrop을 도와주었다. 첫 번째,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사일은 명중률이 낮아 BVR(Beyond-Visual Range) 능력의 부재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부터 시계내 공중전(WVR, Withing-Visual Range)보다는 BVR 능력이 부각되었다. 그래서 대만은 F-5를 대체할 기종으로 강력한 레이더를 탑재한 F-4 Phantom II를 도입하고자 하였지만 1970년대부터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가 긴밀해짐에 따라 도입이 좌절되었다. 따라서 Northrop이 AIM-7 Sparrow 장거리 미사일을 운용하며 BVR 교전 능력을 갖춘 F-5 개량형을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F-5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었던 대만에 제안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었다.
두 번째, 1977년에 당선된 미국의 제 37대 대통령 지미 카터 이상적인 평화주의자로서 나토, 일본,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이스라엘 및 이집트를 제외한 국가들에게는 미국의 일선급 전투기의 수출을 제한하였다. (이집트는 1979년에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는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최신예 전투기 F-16을 무리없이 도입할 수 있었다.) 따라서 F-5 후계기를 찾는 그러나 미국의 최신예 기체를 도입할 수 없는 국가들에게는 F-5 개량 사업(F-5G)이 어쩌면 유일한 선택지였을 것이다. 물론, Northrop만이 이러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General Dynamics 역시 F-16을 다운그레이드한 F-16/79를 개발하여 F-5G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였다. F-16/79는 과거 F-4 팬텀이 사용하던 J79-GE-119 엔진을 장착한 기종으로서 기존과는 다른 엔진을 수납하기 위해 공기흡입구와 동체 후미가 연장된 점이 특징이다. 1980년 10월 29일에 초도비행을 실시하였다. F-16/79는 다른 문헌에서는 F-16 ECO(Engine Changed Only)라고도 불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Northrop은 F-16/79와 경쟁하고자 그리고 F-5에서 소폭 개량된 전투기라는 이미지를 벗고자 16보다 큰 숫자이며 다가올 20세기를 나타내고자 F-5G가 아닌 F-20으로 미 공군에게 제식명칭 변경을 요청하였고 미 공군은 1982년에 이를 승인하여 F-5G는 F-20이 되었다.
그리고 F-20 Tigershark는 여러모로 F-16보다 뛰어났으며 대만을 위한 맞춤형 전투기였다. 우선, 앞서 언급했듯이 F-16A/B에 탑재된 AN/APG-66 레이더를 약간 상회하는 고성능 다목적 레이더 General Electric AN/APG-67를 탑재하였다. 이를 통해 F-20은 과거 F-5가 갖추지 못한 BVR 교전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당연히 고성능 레이더가 탑재되면서 F-20은 AIM-7 스패로우(Sparrow)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체급에 어울리지 않게 비록 한 발뿐이지만 하푼(Harpoon) 대함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었는데, 이는 Northrop이 대만을 의식하여 넣은 기능으로 보인다. 한편, 기수부는 각종 레이더와 항전장비들을 수납하게 되면서 F-5E에 비해 둥글둥글하고 대형화되어 'Tigershark'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개선된 레이더와 함께 최초로 글라스 콕핏(glass cockpit)을 적용한 F/A-18 Hornet을 개발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던 Northrop은 당시 F-16A/B에는 탑재되지 않은 2개의 MFD(Multi-Function Display)를 가진 글라스 콕핏을 도입하였다.
2개의 J85-GE-21 엔진을 탑재했던 F-5E와 달리 하나의 F404-GE-100을 탑재한 점도 주목할만하다. 비록 쌍발에서 단발로 변했으나 F404는 F-18 함재기에 사용되는 엔진으로서 하나만으로도 과거 J85 엔진 2개를 상회하는 추력을 만들 수 있었다. 덕분에 엔진 추력이 60~80% 가량 향상되어 가속력이나 상승속도가 대폭 증가되었으며 추력대중량비는 경쟁자였던 F-16을 가뿐하게 상회(1.13)하였다. 이밖에도 당시에는 최첨단 기술이었던 탄소 복합재를 다량 적용하여 기체 수명은 6,000 시간이었던 F-16에 비해 2,000 시간 더 길었다. 수직미익도 30% 정도 확대하여 F-5의 약점이었던 피치(pitch) 기동 성능을 대폭 향상시켰다. 이처럼 시계외 교전 능력과 강력한 추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기동성 그리고 기존 F-5 국가들 입장에서는 저렴하고 운용하기도 편한 F-20은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수출될 것이라 기대되었다. 당연히 Northrop 역시 F-20 연구개발을 자체적으로 그리고 사활을 걸고 진행했을만큼 확신으로 가득했다. 기체는 1982년 8월 30일에 성공적으로 초도비행을 마쳤다.
하지만, 1970년대 Northrop을 밀어주던 국제 정세는 이번에는 Northrop을 방해하였다. 1981년에 당선된 미국의 제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지미 카터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평화'를 슬로건으로 내걸면서 힘으로 공산 진영을 굴복시키겠다는 극보수주의자였다. 게다가 1979년에 동구권 국가들의 군비 강화가 미국의 최신예 전투기의 확산과 무관함이 밝혀진다. 따라서 레이건 행정부는 우방국들에게 미국의 최신예 전투기 판매를 승인하였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대만은 최신예 전투기를 도입할 수 없었으므로 Northrop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이 중국과 수교를 맺은 이후에도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모습이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에 미국은 1982년에 '817 성명'을 발표하면서 중국에게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겠다고 약속한다. 레이건은 대만에게 무기를 공급하여 중국을 압박하는 것보다는 중국의 비위를 맞춰 소련을 압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보였을 것이다. 결국, Northrop은 한 순간에 자신들의 주된 판매처였던 대만을 잃고 만다. 이에 Northrop은 곧바로 대만 다음으로 F-5를 많이 운용하고 있었던 대한민국을 찾아간다.
이미 가장 큰 거래처를 잃은 상황이었으므로 Northrop은 우리나라에 F-20을 판매하는데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군은 아무리 큰 성능 향상이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더 이상의 개량할 여지가 없으며 자국 공군(미 공군)이 도입하지 않을 전투기보다는 미 공군이 운용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비교적 최신인데다가 개량할 여지가 충분한 F-16을 원했다. 그러다보니 Northrop은 훗날 '노스롭 스캔들'이라고 불리는 비리(또는 로비)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로비와는 별개로 1984년 10월 10일, 수원 비행장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시연 중이던 기체가 추락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이후 1985년 5월, 캐나다에서도 비행이 이루어졌지만 기체의 기동성이 과도하게 뛰어난 바람에 한국에서와 동일한 이유로 조종사가 의식을 잃어 기체가 추락하고 말았다. 결국, 3대의 시제기 중 2대의 시제기가 추락하면서 F-20의 이미지 또한 말그대로 추락하고 말았다. 바레인(4대)과 모로코(20대)에서 주문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 규모가 대만이나 우리나라만큼은 아니었기에 Northrop은 1986년 1월, 조용히 사업을 종료하였다.
F-20 사업이 종료된 이후 미국은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중국과 등을 돌리게 된다. 덕분에 대만은 1990년대 초반부터 4세대 전투기를 외국에서 들여올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프랑스에서 F-16에 대응하여 개발한 Mirage 2000 도입을 시작으로 프랑스에게 대만이라는 시장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 미국이 F-16A/B Block 20 판매를 승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Northrop이 1989년까지 사업을 중단하지 않았을지라도 F-20에게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했듯이 성능은 우수했을지라도 F-16보다 체급도 낮으며, 미 공군이 도입하지 않을 전투기라는 점 그리고 이미 비슷한 체급의 하지만 보다 강력한 전투기들이 대거 등장함에 따라 F-20이 차지할 수 있는 파이는 Northrop이 처음 구상했던 것과 다르게 많이 줄어들었다.
[추가내용1]
내용과 별개로 미 공군이 운용하는 기체를 사용하는 것은 여러모로 유리하다. 예를 들어, 미 공군이 F-16 개량 사업을 추진하면 외국 입장에서는 해당 사업의 연장선으로 자신들의 기체를 개조할 수 있으나 미국이 운용하지 않는 기체라면 자신들이 직접 사업을 추진해야하며 이는 온전한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지속적인 운용 면에서도 유리하다. 미군이 운용하는 기체이므로 정비 부품이 끊임없이 생산 및 관리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내용2]
그리고 F-20 사업에 실패한 Northrop은 이후 ATB(Advanced Technology Bomber) 사업에서 Lockheed를 누르고 승리하여 피해를 메꿀 수 있었다. 참고로, F-20 전투기 사업을 이끌던 Thomas Victor Jones는 책임을 지고 1989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1991년 미 공군에서 추진한 5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인 ATF, Advanced Tactical Fighter 사업에서 Lockheed의 YF-22에게 패배하면서 냉전 종식에 따른 군축 흐름과 함께 1994년, Grumman과 합병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Northrop Grumman이 되었다. 현재 단 하나만 남은 3번째 시제기(82-0074/N44671)는 LA 시내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과학센터(California Science Center)에 전시되어 있다. 첫 번째 시제기(82-0062/N4416T)는 비행성능 시험에 사용되었으나 수원 비행장에서 시연 비행을 하던 중 사고로 추락하였다. 조종실이 개량된 두 번째 시제기(82-0063/N3986B)는 비행성능 및 무장발사 시험에 사용되었으나 캐나다에서 일어난 비행 사고로 손실되었다. 참고로 1985년 5월 14일에 F-20이 캐나다에 방문한 이유는 다가오는 파리 에어쇼에 참가하기 위한 훈련 차원의 방문이었다.
[추가내용3]
F-16/79 역시 F-20과 동일한 운명을 맞이했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에서 F-16A/B 판매를 승인하면서 고객 입장에서는 굳이 성능을 한 단계 내린 F-16/79를 도입할 이유가 없었다. F-16/79는 F-16보다 엔진 추력이 25% 낮았다. 연비도 떨어져 항속거리도 줄어들었다. 싱가포르 공군과 유일하게 계약을 수주했으나 F-16/79 사업이 종료되면서 싱가포르 공군에게는 중고 F-16A 전투기가 대신 판매되었다. 반대로 F-20을 도입하지 못하게 된 바레인과 모로코는 F-20 전투기 대신 F-5E 전투기를 도입하였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무기를 판매하는 국가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고객이며 무기를 도입하려는 국가 입장에서는 매우 예의주시해야할 필요가 있는 국가이다. 우리나라는 엄연히 휴전 중이며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값싸고 성능 좋은 무기를 도입해야 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며 충분히 고가의 전투기를 도입할 경제적인 능력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다보니 비교적 그 기준이 까다롭다보니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도입하기로 한 기체는 믿고 구매할 수 있는, 성능이 보장된 기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실제로 F-15K의 도입이 성사된 이후 Rafale을 고려하고 있었던 싱가포르와 사우디 아라비아는 모두 F-15SG와 F-15SA를 도입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항상 우리나라에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도입하는 것은 절대 아니니 잘못된 국뽕에 취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추가내용4]
가벼운 기체에 강력한 엔진을 탑재하며 항전장비를 대폭 개량하여 개발된 고성능 전투기였던 만큼 출격 명령이 떨어지면 곧바로 이륙하여 불과 2-3분 내에 고도 40,000 피트(12 km)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 특히 출격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엔진 시동에는 불과 55초, 관성항법장비(INS) 가동은 22초면 충분했다. 이러한 강점을 살려 주방위군에서 운용하고 있었던 노후한 F-106 전투기를 대체할 기종으로 제안하였으나 이 역시 미 공군이 운용하고 있는 F-16A에 AIM-7 중거리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도록 개량하여 이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미 공군 현역 부대는 F-16C를 새로 도입하게 되었다.
[추가내용5]
카터 행정부는 무기 판매 제한 정책으로 미국이 운용하는 무기보다 성능이 낮은 무기를 그것도 사내 자금을 들여 개발해라고 지시했으므로 해당 사업에 관심을 가진 회사는 Northrop와 General Dynamics 뿐이었다. 제약 조건도 많았다 미국이 운용하고 있는 F-16보다는 성능이 낮되 F-5E보다는 성능이 뛰어나야 했으며 미국의 도움 없이 또는 허락 없이는 독자적으로 기체 개량이 불가능하도록 설계해야 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General Dynamics F-16 Fighting Falcon Variants
Wikipedia, Northrop F-20 Tigershark
Los Angles Times, F-20 Crash in Canada Kills Northrop Test Pilot
네이버 무기백과사전, F-20 타이거샤크 전투기
네이버 무기의 세계, F-20 타이거샤크
봄날애TM, F-20(F-5G) 타이거 샤크
유용원의 군사세계, F-20 타이거 샤크
엔트로피, F-20 타이거 샤크
미중 관계 (영어 : China-United States Relations) 4편
F-16.net The FX Export Fighter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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